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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바퀴의 고향은 사실 독일이 아니라 아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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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6-04 02:04 조회2,3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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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싱가포르국립대 연구진은 독일바퀴들의 고향이 이름과는 달리, 아시아라는 점을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Q. 흔히 바퀴벌레는 인간이 멸망해도 살아남아 지구를 ‘접수’할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잖아요. 정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있다가 한밤중에 화장실이나 부엌에 출몰해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하는데요, 바퀴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인간의 ‘동거 곤충’ 된 건가요. 왜 자연이 아닌 인간 곁에 있는 건지, 이들의 진짜 ‘고향’이 어딘지 궁금합니다.

A. 지금 모습의 바퀴벌레는 중생대 백악기에 처음 출몰해 빙하기도 겪어낸 ‘최강 생존력’을 갖춘 생물입니다. 전 세계 4000~5000종이 살고 있고, 이 가운데 30여 종은 인간의 거주지에 완벽 적응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집에서 몰아내려고 해도 잘 안 없어져서 미움을 사는 곤충이기도 합니다.

인간과 바퀴벌레는 정말 오래되고 질긴 인연입니다. 이집트 18대 왕조(기원전 1750~1304년)에 쓰인 ‘사자의 서’에도 “나에게서 떨어져라, 이 미천한 벌레여”라는 주문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바퀴 가운데 가장 흔한 미국바퀴(이질바퀴)와 독일바퀴는 하수구 등 오염된 공간과 인간의 거주지를 오가며 병원균을 옮기기도 하니, 우리로서는 박멸해야 할 해충이기도 하지요.

우리나라에 사는 바퀴벌레는 집바퀴, 먹바퀴, 미국바퀴, 독일바퀴 등 8~10종인데요, 그 가운데 83%가 독일바퀴라고 합니다. 독일바퀴는 인간의 거주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야생에는 거의 없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바퀴, 미국바퀴라고 부르지만 해당 나라와는 큰 연관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생물분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웨덴 식물학자 칼 폰 린네는 1767년 최초로 ‘바퀴’라는 종을 명명하면서 독일바퀴(Blatta germanica)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블라타’는 라틴어로 ‘빛을 피한다’는 뜻이고, ‘게르마니카’는 그가 조사한 표본이 독일에서 채집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빛을 피해 구석에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습성을 반영한 것이죠. ‘블라타’라는 속명은 나중에 더 작은 종류의 바퀴벌레까지 한데 묶기 위해 ‘블라텔라’(Blattella)로 변경되어 현재 바퀴의 학명은 ‘블라텔라 게르마니카’(Blattella germanica)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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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싱가포르국립대 연구진은 독일바퀴의 고향이 아시아라는 점을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첸탕 싱가포르대 생물학 박사와 연구진은 20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독일바퀴가 아시아 지역에서 유래해 인간의 이동 경로를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독일바퀴의 ‘조상’을 아시아바퀴(Blattella asahinai)로 추정하고, 호주·브라질·체코·인도·에티오피아·중국·한국 등 17개국에서 바퀴벌레 281마리의 디엔에이(DNA) 샘플을 수집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바퀴의 디엔에이 염기서열이 인도 벵골만에 서식하는 아시아바퀴의 거의 동일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구진이 분석한 독일바퀴의 유전체는 아시아바퀴와 80% 이상 일치했고, 나머지 20%도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두 종은 불과 2100년 전 벵골만에서 서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갈라진 것”이라고 전문가 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독일바퀴가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먼저 진화했을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긴 했지만, 이것을 유전체 분석을 통해 증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불어 연구진은 독일바퀴가 어떠한 경로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지도 소개했는데요, 독일바퀴의 이동은 이슬람 왕조의 유럽 진출, 열강들의 제국주의 무역과 궤를 같이한다고 전했습니다. 먼저 독일바퀴가 아시아바퀴에서 분화해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한 것은 약 12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독일바퀴는 역대 이슬람 왕조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을 다스렸던 우마이야 왕조(661~750년)의 군대와 함께 점점 더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우마미야 왕조는 중동에서 시작해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이베리아반도까지 영토를 넓혔기 때문입니다.
연구진은 독일바퀴가 벵골만에서 시작해 두 차례 서쪽으로, 이후에는 동쪽으로 퍼져나갔다고 추정했다. 첸탕/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연구진은 독일바퀴가 벵골만에서 시작해 두 차례 서쪽으로, 이후에는 동쪽으로 퍼져나갔다고 추정했다. 첸탕/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다음 대이동은 제국주의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등은 17세기 초부터 동남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무역을 했는데요, 당시 무역을 위해 이동하던 배를 타고 독일바퀴가 유럽 등 서쪽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두 번의 대이동 이후 독일바퀴는 동쪽으로도 이동했습니다. 바로 한국과 중국으로 서식지가 확장된 것이죠. 이는 불과 170년 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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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해 온 ‘동거 곤충’인 바퀴는 사람에게는 병을 옮기는 골칫거리이기도 하죠. 도대체 바퀴는 어떻게 이렇게 강한 생존력을 갖추게 된 것일까요. 과학자들은 바퀴의 뛰어난 적응력을 꼽습니다. 2018년 중국 화남사범대 곤충과학기술연구소가 미국바퀴의 유전자를 분석했는데요, 유독 생존과 직결된 영역이 잘 발달되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냄새를 감지하는 화학수용체 유전자 수는 흰개미류보다 3배(154개)나 많았고, 미각 수용체 또한 552개로 지금껏 보고된 곤충 가운데 가장 많았다고 해요. 이렇게 냄새 감지 능력이나 미각이 잘 발달하면 부패한 음식이나 독을 방출하는 식물로부터 자신을 더 잘 지킬 수 있겠죠. 또 잘 아시겠지만, 바퀴는 굉장히 재빠릅니다. 바퀴의 최대 이동속도는 초속 25㎝로, 사람으로 치면 시속 338㎞에 해당하고요, 아무리 좁은 틈이라도 유연하게 비집고 들어가는 능력도 갖췄습니다. 미국에서는 바퀴의 능력을 본 따 로봇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죠.

이 정도면, 바퀴의 ‘지구접수설’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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