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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소만 A4 네 장…한국 세입자의 ‘독일 주택사회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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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0-02 22:32 조회 3,69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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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

60년대부터 전면철거식 재개발 막고
월세 올리려 세입자 내보내기 불법화
임대차계약 기간 없애는 등 투쟁해와
승리 경험이 사회적 상상력 밑천으로

독일 베를린 세입자 운동이 승리했다. 3천 채 이상 임대주택을 가진 회사의 주택을 사회화하자는 주민 표결에서 과반 지지를 얻었다. 강제력을 갖는 표결이 아니라 실제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법을 제정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좌절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많은 도시가 심각한 부동산 가격 폭등과 임대료 인상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지구 한편에서 살아가는 세입자로서 무척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시행사·소유자보다 ‘살고 있는 주민’ 중심
쫓겨난 자리에 지어지는 집소유자의 재산권이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취급받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런 투표가 가능했던 것은 오랜 시간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를 두고 싸워온 베를린 시민들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크로이츠베르크 시민들은 서베를린 정부의 전면 철거를 통한 재개발 정책을 좌절시켰고, 시행사나 소유자가 아닌 ‘살고 있는 주민’의 욕구에 따른 도시재생계획 수립에 대한 원칙을 확보했다. 베를린에서는 1970년에서 2014년 사이 630채 이상의 주택 점거운동이 일어났고, 이 중 200채 이상이 합법화됐다.
세입자에게 유리한 결정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통일 직후 베를린의 공영임대주택은 48만2천 채로 전체 주택의 28%를 차지했으나, 현재까지 약 25만 채의 공영주택이 꾸준히 민간에 팔렸다. 특히 2000년에서 2011년까지 집권한 보베라이트 연립정부는 총 12만 채의 공영주택을 기업에 넘겼다.
시 정부의 주머니를 불려준 주택 민영화는 전체 세입자와 시민에게 높은 임대료와 불안정한 주거 기간으로 돌아왔다. 베를린 세입자 운동이 주택 사회화를 요구한 배경이다. 도이체 보넨을 비롯해 3천 채 이상 주택을 보유한 회사 11개의 주택 수를 합하면 24만 채가량이다. 즉 ‘3천 채’라는 기준은 지난 시간 약탈당한 권리를 되찾아오는 출발선인 셈이다.
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각자의 집살이는 무척 다르다. 방을 아무렇게나 쪼개 임대료를 받는 집을 전전하던 시기나 지금이나 내 소망은 2년의 계약 종료와 임대료 인상을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집을 갖지 않으면 이 소원을 성취할 수 없을 것으로 믿었지만 다른 국가 세입자의 사정은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 배신감마저 들었다.
독일은 임대차 계약에 기간을 정하지 않는다. 월세를 더 받기 위해 세입자를 내보내는 것은 불법이다. 부동산기업과 소유자의 권한이 강해질수록 독일 세입자의 처지도 후퇴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이미 권리를 확보해온 승리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상상의 지평을 다시 한번 넓혔다.
그냥 된 건 없다, 그들도 엄청 싸웠다
서두에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정도가 아니다. 부러워서 침이 뚝뚝 떨어진다. 내가 살아온 집들의 주소가 빼곡히 담긴 주민등록초본을 인쇄하면 4페이지가 나온다. 주소지 이전등록을 하지 않고 살았던 집들을 합하면 한두 장이 추가될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이미 주소가 사라졌다. 그 자리엔 더 비싼 집들이 세워졌고, 나도 누군가 쫓겨난 자리에서 살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뺏고 뺏기며 높아지는 집값만 턱 빠지게 쳐다보는데 주택 사회화라니. 세상의 룰을 바꾸자는 이 용감한 협상을 질투하지 않고 어떻게 배기리.
부러워한들 어쩌겠는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는 이곳을 영영 떠나기는 글렀기 때문에 이계수 선생님 글 ‘어느 법 연구자의 도시 관찰’의 한 구절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베를린의 옛집들을 보면서, ‘이런 거 잘 보전하는 여기 사람들 부럽다’ 하는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꼭 한마디 하게 된다. 그냥 된 건 없다. 엄청 싸웠다. 현재의 이 모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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