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정치판 뒤흔든 ‘MZ 세대’ 부상…내년 대선 승리하려면 변화를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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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01 01:30 조회 3,773 댓글 0본문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지난 4월7일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마련된 투표소 입구에 유권자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왼쪽 사진).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개표상황실을 지키던 당직자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빈 의자만 남았다. 권도현 기자·국회사진기자단
어둠이 물러가서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니다. 해가 뜨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가는 것이다. 겨울이 물러가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이 오기 때문에 겨울이 물러가는 것이다. 민들레가 피면 춥고 긴 겨울은 끝난 것이다. 이연실은 ‘민들레’에서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시름앓고 울었네. 길고도 추웠던 겨울 견디어 화사하게 피어났다네. 겨울이 가면 봄이 올 줄을 잊고 살았네 그랬네. 그 겨울 길고도 추웠음에 깜빡 잊고 살았네. 민들레 민들레 피어나 봄이 온 줄 알았네…”라고 노래했다. 혹독한 독재를 견디고 피어난 민들레는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은 1962년부터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1992년까지 30년은 ‘군인’의 시대였다.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으로 열고 2022년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으로 닫히는 30년은 ‘민주’의 시대다. 30년은 한 세대다. 또 한 세대가 가고 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도서>
나는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후 ‘프레시안’에 기고한 ‘2039년의 대한민국’이라는 칼럼에서 “1919년 1월21일 고종이 죽었을 때, 대중은 비로소 왕조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나라는 오래전에 망했고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었으나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조선’은 사라졌다…30년 후인 1949년 6월26일 김구가 죽었을 때, 대중은 비로소 독립운동의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수년이 흘렀고 이미 한반도 남북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통일된 조국’이 미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30년 후인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죽었을 때, 대중들은 비로소 독재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그 전 해인 1978년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득표율에서 공화당을 앞섰고, 1979년에는 YH 사태, 부마항쟁 등 철권통치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나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두려움’이 사라졌다…30년 후인 2009년 김대중이 죽었을 때, 대중들은 비로소 민주화의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민주화운동 출신의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연속으로 대통령이 되고,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당연한 듯 자리 잡았지만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민주화 시대’는 막을 내렸다…30년은 한 세대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을 30년쯤으로 보는 것이다. 또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갖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전체를 한 세대라 부른다. 그러니까 한 세대의 사람들은 공통의 경험, 추억, 인식, 인물, 성취 등 ‘세대의 역사’가 있다. 우리는 한 세대를 거칠 때마다 ‘신화’를 만들어 왔다…30년의 한 세대마다 이처럼 찬란한 성취를 이룬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가히 기적과 신화, 그리고 영웅의 나라다…30년 후인 2039년 우리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지도자를 잃을 수 있다. 그가 누구일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세대의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다음 세대의 지도자도 ‘위대한 유산’을 남길 것이다. 다음 세대는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는 세대일 수도 있고, ‘선진 강국의 시대’를 여는 세대일 수도 있다…”라고 썼다.
디지털 환경서 자라온 2030,
공유·공정·공존·공생의‘더불어’ 삶에 목말라 있어
당당하게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보수’와
‘중국·북한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진보’ 원해
기득권은 결코 스스로 물러가지 않는다. 끝까지 저항하다 ‘새로운 세대’에게 밀려난다. 민주의 시대를 열었던 ‘586 세대’도 역사의 순리에 따라 ‘선진국’에서 태어난 ‘2030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에 자리를 내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2022년 대선에서 새로운 신화를 이끌 주력 부대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30년’이 오고 있다. 물론 30년이 흘렀다고 저절로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민들레’가 피어야 친미 대 반미, 친북 대 반북, 친일 대 반일,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이분법적 시대를 끝낼 수 있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신화를 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 모두를 의심, 경계, 고립으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종식과 함께 다시 한번 기적과 신화를 만들 수 있는 ‘연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난 60년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는 전쟁 같은 극단적 진영의 시대를 살면서도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를 이루어낸 저력이 있다. 그러나 AI와 팬데믹 시대에는 인간·자연·기계의 공존과 사회적 연대가 없으면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기업도 재무적 성과만을 중시하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중시하는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개최한 ‘기후정상회의’에서도 ‘탄소중립’을 위한 ‘탈석탄’ 기조가 되돌릴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했다. 우리는 석탄 발전과 결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석탄은 낡은 시대, 낡은 정치를 상징하는 메타포일 수도 있다.
세상을 오직 ‘북한’이라는 프리즘으로만 본 전 세대의 ‘반공 프레임’을 거부하고 세상을 ‘민주’의 프리즘으로 보는 시대를 열었던 ‘586 세대’를 극복하고 ‘2030 MZ 세대’는 새로운 가치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이 세대는 상대를 단지 ‘이길’ 경쟁자로 본다. 스포츠처럼 공정한 룰, 치열한 경쟁, 깨끗한 승복이 작동하는 사회를 원한다. ‘엄마 찬스, 아빠 찬스’에 분노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전 세대와 달리 이들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상대적 인식에 관대한 태도를 갖고 있다. 기술의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온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공유·공정·공존·공생의 ‘더불어’ 삶에 더 목말라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공정한 보상에 예민하지만 역설적으로 경쟁에 대한 자신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기도 하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받은 윤여정 수상 소감서
꼰대 같지 않은 모습에 열광한 건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
강고했던 프랑스·독일의 거대 양당 무너뜨렸던
젊은 세대처럼 한국에서도 분노 표출 닮아
이번 재·보선에서 보여준 경고에도 비판 목소리 못 읽었다면
‘2022 대선’서 정권 교체 될 것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 “사실 경쟁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와 경쟁을 하겠습니까? 글렌 클로스의 훌륭한 연기를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5명의 후보가 다른 영화로 각자의 역할을 해낸 승자입니다. 단지 오늘 밤 제가 운이 좀 더 좋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경쟁사회에서 숨 막혔던 그들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도 67살이 처음이야”라고 했을 때도 꼰대 같지 않은 모습에 열광했다.
그가 “난 못생기지 않았다. 난 시크하다. 그런데도 KBS에서 수십년 드라마를 했으나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 한 번 못 탔다” “조역전문배우로서 한마디 하겠다. 난 드라마가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배우로서의 삶은 때로는 주연이고 조연이고 단역일 때가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긴 과정에서 순서처럼 오는 것 같다” “최고라는 말은 싫다. 다 ‘최중’이 되면 안 되냐”, 무엇보다 이혼 후 “두 아들과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말했을 때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2030 세대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역시 위대함은 비루함에 깃드는 것이다.
자신감(?) 있는 영어로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란 게 칭찬이겠지만 저는 단지 한국의 윤여정이다”, “미국에서 출연 제의가 오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할리우드를 동경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할리우드를 동경하지 않는다. 계속 오는 이유는 미국에서 일하면 내 아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어서다”라고 말하는 당당함과 솔직함에 환호했다. 자기들이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에” 매료된 것이다.
이 세대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기술 강국, 문화 강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윗 세대와 달리 열등감이 없다. 이들은 당당하게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보수’와 ‘중국과 북한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진보’를 원한다. 반공주의, 국가주의, 시장만능주의, 낡은 민족주의, 회사주의 모두 배격한다. 이들에게 김정은은 그저 ‘할아버지, 아버지 잘 만난 재벌 3세’와 똑같을 뿐이다.
성과급 이슈에서 보듯 ‘공정한 보상’에 민감한 ‘MZ 세대’는 “능력은 없으면서 돈만 많이 받는” 연공서열에 반감을 갖고 있다. 현대자동차·LG전자·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의 출범은 새로운 ‘혁명’ 세대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다. 공정한 보상, 연공서열제 거부, 52시간제 준수, 65세 정년 연장 반대, 업무 시간과 여가의 분리가 젊은 노조의 요구사항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는 ‘능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유명한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인간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 쓰이는 테크놀로지는 자연스러운 세계의 일부로 느낀다. 15세에서 35세 사이에 발명된 테크놀로지는 새롭고 아주 신나는 걸로 느끼고, 35세 이후에 발명된 테크놀로지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어릴 때 접한 기술은 기술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15세에서 35세 사이에 만난 기술은 놀라운 기술이고, 35세 이후에 나온 기술은 한마디로 부담스러운 기술이라는 것이다. 경험이 아니라 기술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패권이 디지털 네이티브인 2030세대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재집권하려면 ‘2030 MZ 세대’에서 예전처럼 압도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떠난 이들이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올까? 만약 다 돌아오지 않고 50% 정도의 지지에 머무른다면 정권은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불과 40%의 지지만 받는다면 정권은 확실히 교체될 것이다.
과연 이들은 한 번의 경고에 만족하고 회군할까? 아니면 ‘586 세대’가 군사독재 시대를 끝내고 자신들의 시대를 열었듯이 ‘2030 MZ 세대’도 난공불락 ‘586 권력’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고 자신들의 시대를 열 것인가? 이들 손에는 ‘586 세대’의 조직화된 힘보다 훨씬 강력한 혁명의 무기인 스마트폰이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30년은 ‘청산’의 시대였다. 정통성에 자신 있었던 민주 정부는 바로 그 정통성 때문에 청산의 강박에 사로잡혔다. 김영삼 정부는 ‘군사독재 청산’, 김대중 정부는 ‘보수 청산’, 노무현 정부는 ‘기득권 청산’, 이명박 정부는 ‘좌파 청산’, 박근혜 정부는 ‘종북 청산’,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에 몰두했다. 불행하게도 모두 과거의 노예가 됐다.
그래도 앞의 네 정권은 청산 후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라도 있었는데 박근혜·문재인 두 정권은 내내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힘을 갖거나, (그럴 힘이 없다면)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꿔야 한다. ‘독재’를 하거나 ‘선거’를 잘하거나다.
지금은 총칼로 통치할 수 없으니 민심에 예민해야 살아남는다. 군사 정권이 민심을 더 누르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듯이 박근혜·문재인 정권은 민심을 외면하다 몰락을 자초했다.
‘위닝 멘털리티’가 있는 팀이나 선수는 지고 있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반대로 강자 프리미엄에 주눅든 팀이나 선수는 이기고 있어도 결국은 질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 ‘주류 의식’이 없으면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주류 교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그건 ‘비주류 의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역사적 압승을 거두고도 여전히 ‘비주류 운동권’ 의식에 머물러 있다면 영원히 주류가 될 수 없다.
비주류는 국정에 대한 책임감이 약하다. 한번도 주류의 시각에서 국정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은 단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결국 국정 무능은 미래 세대에게 청산당할 운명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강고했던 거대 양당을 무너뜨렸던 젊은 세대가 한국에서도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2030 MZ 세대’가 ‘새로운 30년’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은 ‘586 세대’에게는 시대의 마지막 밤이고, ‘MZ 세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전야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1-08-02 15:18:59 핫뉴스에서 이동 됨]
어둠이 물러가서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니다. 해가 뜨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가는 것이다. 겨울이 물러가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이 오기 때문에 겨울이 물러가는 것이다. 민들레가 피면 춥고 긴 겨울은 끝난 것이다. 이연실은 ‘민들레’에서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시름앓고 울었네. 길고도 추웠던 겨울 견디어 화사하게 피어났다네. 겨울이 가면 봄이 올 줄을 잊고 살았네 그랬네. 그 겨울 길고도 추웠음에 깜빡 잊고 살았네. 민들레 민들레 피어나 봄이 온 줄 알았네…”라고 노래했다. 혹독한 독재를 견디고 피어난 민들레는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은 1962년부터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1992년까지 30년은 ‘군인’의 시대였다.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으로 열고 2022년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으로 닫히는 30년은 ‘민주’의 시대다. 30년은 한 세대다. 또 한 세대가 가고 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도서>
나는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후 ‘프레시안’에 기고한 ‘2039년의 대한민국’이라는 칼럼에서 “1919년 1월21일 고종이 죽었을 때, 대중은 비로소 왕조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나라는 오래전에 망했고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었으나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조선’은 사라졌다…30년 후인 1949년 6월26일 김구가 죽었을 때, 대중은 비로소 독립운동의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수년이 흘렀고 이미 한반도 남북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통일된 조국’이 미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30년 후인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죽었을 때, 대중들은 비로소 독재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그 전 해인 1978년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득표율에서 공화당을 앞섰고, 1979년에는 YH 사태, 부마항쟁 등 철권통치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나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두려움’이 사라졌다…30년 후인 2009년 김대중이 죽었을 때, 대중들은 비로소 민주화의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민주화운동 출신의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연속으로 대통령이 되고,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당연한 듯 자리 잡았지만 그가 죽고서야 마음속 ‘민주화 시대’는 막을 내렸다…30년은 한 세대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을 30년쯤으로 보는 것이다. 또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갖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전체를 한 세대라 부른다. 그러니까 한 세대의 사람들은 공통의 경험, 추억, 인식, 인물, 성취 등 ‘세대의 역사’가 있다. 우리는 한 세대를 거칠 때마다 ‘신화’를 만들어 왔다…30년의 한 세대마다 이처럼 찬란한 성취를 이룬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가히 기적과 신화, 그리고 영웅의 나라다…30년 후인 2039년 우리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지도자를 잃을 수 있다. 그가 누구일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세대의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다음 세대의 지도자도 ‘위대한 유산’을 남길 것이다. 다음 세대는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는 세대일 수도 있고, ‘선진 강국의 시대’를 여는 세대일 수도 있다…”라고 썼다.
디지털 환경서 자라온 2030,
공유·공정·공존·공생의‘더불어’ 삶에 목말라 있어
당당하게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보수’와
‘중국·북한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진보’ 원해
기득권은 결코 스스로 물러가지 않는다. 끝까지 저항하다 ‘새로운 세대’에게 밀려난다. 민주의 시대를 열었던 ‘586 세대’도 역사의 순리에 따라 ‘선진국’에서 태어난 ‘2030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에 자리를 내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2022년 대선에서 새로운 신화를 이끌 주력 부대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30년’이 오고 있다. 물론 30년이 흘렀다고 저절로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민들레’가 피어야 친미 대 반미, 친북 대 반북, 친일 대 반일,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이분법적 시대를 끝낼 수 있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신화를 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 모두를 의심, 경계, 고립으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종식과 함께 다시 한번 기적과 신화를 만들 수 있는 ‘연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난 60년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는 전쟁 같은 극단적 진영의 시대를 살면서도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를 이루어낸 저력이 있다. 그러나 AI와 팬데믹 시대에는 인간·자연·기계의 공존과 사회적 연대가 없으면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기업도 재무적 성과만을 중시하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중시하는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개최한 ‘기후정상회의’에서도 ‘탄소중립’을 위한 ‘탈석탄’ 기조가 되돌릴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했다. 우리는 석탄 발전과 결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석탄은 낡은 시대, 낡은 정치를 상징하는 메타포일 수도 있다.
세상을 오직 ‘북한’이라는 프리즘으로만 본 전 세대의 ‘반공 프레임’을 거부하고 세상을 ‘민주’의 프리즘으로 보는 시대를 열었던 ‘586 세대’를 극복하고 ‘2030 MZ 세대’는 새로운 가치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이 세대는 상대를 단지 ‘이길’ 경쟁자로 본다. 스포츠처럼 공정한 룰, 치열한 경쟁, 깨끗한 승복이 작동하는 사회를 원한다. ‘엄마 찬스, 아빠 찬스’에 분노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전 세대와 달리 이들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상대적 인식에 관대한 태도를 갖고 있다. 기술의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온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공유·공정·공존·공생의 ‘더불어’ 삶에 더 목말라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공정한 보상에 예민하지만 역설적으로 경쟁에 대한 자신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기도 하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받은 윤여정 수상 소감서
꼰대 같지 않은 모습에 열광한 건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
강고했던 프랑스·독일의 거대 양당 무너뜨렸던
젊은 세대처럼 한국에서도 분노 표출 닮아
이번 재·보선에서 보여준 경고에도 비판 목소리 못 읽었다면
‘2022 대선’서 정권 교체 될 것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 “사실 경쟁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와 경쟁을 하겠습니까? 글렌 클로스의 훌륭한 연기를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5명의 후보가 다른 영화로 각자의 역할을 해낸 승자입니다. 단지 오늘 밤 제가 운이 좀 더 좋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경쟁사회에서 숨 막혔던 그들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도 67살이 처음이야”라고 했을 때도 꼰대 같지 않은 모습에 열광했다.
그가 “난 못생기지 않았다. 난 시크하다. 그런데도 KBS에서 수십년 드라마를 했으나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 한 번 못 탔다” “조역전문배우로서 한마디 하겠다. 난 드라마가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배우로서의 삶은 때로는 주연이고 조연이고 단역일 때가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긴 과정에서 순서처럼 오는 것 같다” “최고라는 말은 싫다. 다 ‘최중’이 되면 안 되냐”, 무엇보다 이혼 후 “두 아들과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말했을 때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2030 세대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역시 위대함은 비루함에 깃드는 것이다.
자신감(?) 있는 영어로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란 게 칭찬이겠지만 저는 단지 한국의 윤여정이다”, “미국에서 출연 제의가 오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할리우드를 동경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할리우드를 동경하지 않는다. 계속 오는 이유는 미국에서 일하면 내 아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어서다”라고 말하는 당당함과 솔직함에 환호했다. 자기들이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에” 매료된 것이다.
이 세대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기술 강국, 문화 강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윗 세대와 달리 열등감이 없다. 이들은 당당하게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보수’와 ‘중국과 북한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진보’를 원한다. 반공주의, 국가주의, 시장만능주의, 낡은 민족주의, 회사주의 모두 배격한다. 이들에게 김정은은 그저 ‘할아버지, 아버지 잘 만난 재벌 3세’와 똑같을 뿐이다.
성과급 이슈에서 보듯 ‘공정한 보상’에 민감한 ‘MZ 세대’는 “능력은 없으면서 돈만 많이 받는” 연공서열에 반감을 갖고 있다. 현대자동차·LG전자·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의 출범은 새로운 ‘혁명’ 세대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다. 공정한 보상, 연공서열제 거부, 52시간제 준수, 65세 정년 연장 반대, 업무 시간과 여가의 분리가 젊은 노조의 요구사항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는 ‘능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유명한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인간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 쓰이는 테크놀로지는 자연스러운 세계의 일부로 느낀다. 15세에서 35세 사이에 발명된 테크놀로지는 새롭고 아주 신나는 걸로 느끼고, 35세 이후에 발명된 테크놀로지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어릴 때 접한 기술은 기술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15세에서 35세 사이에 만난 기술은 놀라운 기술이고, 35세 이후에 나온 기술은 한마디로 부담스러운 기술이라는 것이다. 경험이 아니라 기술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패권이 디지털 네이티브인 2030세대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재집권하려면 ‘2030 MZ 세대’에서 예전처럼 압도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떠난 이들이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올까? 만약 다 돌아오지 않고 50% 정도의 지지에 머무른다면 정권은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불과 40%의 지지만 받는다면 정권은 확실히 교체될 것이다.
과연 이들은 한 번의 경고에 만족하고 회군할까? 아니면 ‘586 세대’가 군사독재 시대를 끝내고 자신들의 시대를 열었듯이 ‘2030 MZ 세대’도 난공불락 ‘586 권력’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고 자신들의 시대를 열 것인가? 이들 손에는 ‘586 세대’의 조직화된 힘보다 훨씬 강력한 혁명의 무기인 스마트폰이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30년은 ‘청산’의 시대였다. 정통성에 자신 있었던 민주 정부는 바로 그 정통성 때문에 청산의 강박에 사로잡혔다. 김영삼 정부는 ‘군사독재 청산’, 김대중 정부는 ‘보수 청산’, 노무현 정부는 ‘기득권 청산’, 이명박 정부는 ‘좌파 청산’, 박근혜 정부는 ‘종북 청산’,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에 몰두했다. 불행하게도 모두 과거의 노예가 됐다.
그래도 앞의 네 정권은 청산 후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라도 있었는데 박근혜·문재인 두 정권은 내내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힘을 갖거나, (그럴 힘이 없다면)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꿔야 한다. ‘독재’를 하거나 ‘선거’를 잘하거나다.
지금은 총칼로 통치할 수 없으니 민심에 예민해야 살아남는다. 군사 정권이 민심을 더 누르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듯이 박근혜·문재인 정권은 민심을 외면하다 몰락을 자초했다.
‘위닝 멘털리티’가 있는 팀이나 선수는 지고 있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반대로 강자 프리미엄에 주눅든 팀이나 선수는 이기고 있어도 결국은 질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 ‘주류 의식’이 없으면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주류 교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그건 ‘비주류 의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역사적 압승을 거두고도 여전히 ‘비주류 운동권’ 의식에 머물러 있다면 영원히 주류가 될 수 없다.
비주류는 국정에 대한 책임감이 약하다. 한번도 주류의 시각에서 국정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은 단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결국 국정 무능은 미래 세대에게 청산당할 운명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강고했던 거대 양당을 무너뜨렸던 젊은 세대가 한국에서도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2030 MZ 세대’가 ‘새로운 30년’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은 ‘586 세대’에게는 시대의 마지막 밤이고, ‘MZ 세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전야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1-08-02 15:18:59 핫뉴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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