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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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54회 작성일 19-05-31 16:15본문
11. 인터넷 결혼정보업체
개인주의가 팽배해있는 서구사회에서는 부모들도 자식의 혼인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독일의 1600만 명 싱글이 적당한 짝을 찾는 길이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인터넷이다. 현재 싱글의 절반인 8백만 명이 결혼정보업체에 등록된 상태라고 한다. 매출은 2년 전, 1억 유로를 넘었으며 성장률 40%를 초과한 적도 있다.
가입 시 기재사항은 애완동물, 희망하는 실내온도, 교육 수준 등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선을 믿는가?’, ‘현금인출기에 누가 가야 하나?’ 라는 실질적인 질문도 있다.
인터넷 업체도 전문화되어 있다. 뚱보, 가톨릭 신자, 농업종사자, 와인 애호가, 종교를 가진 동성애자, 유대인, 혈액형 맞추기 등 다양하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된 지는 오래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구혼광고는 1727년, 『Manchester Weekly Journal』에 실렸는데 당시 대단한 스캔들이었다고 한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라는 요구가 나올 정도였다. 1950년대에도 철학자 하버마스는 ‘주체가 자신의 복면을 쓰고 최대 주식시장에 나타난 것’이라며 주체가 속물적인 것의 사물로 굳어져버릴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언론도, 사회학자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의 능력이 부족했나 보다. [유럽리포트*2010년]
12. 독일인들의 잔 걱정
거의 완벽할 정도인 독일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은 Hartz IV -Arbeitslosengeld II라고도한다-라는 기초생활 보조금 제도이다. 1인 독신자의 경우 월 359유로, 배우자는 323유로, 자녀는 5세까지 215유로, 6~14세 251유로, 15세부터는 287유로를 받는다. 자녀 양육비 (Kindergeld)는 이와는 별도로 지급된다. 그 밖에도 아파트 월세와 온방비 등 관리비도 지급받는다. 4인 가정의 한 달 보조금이 월평균 1600유로에 달한다고 한다.
이 보조금은 정확한 생활비 산출을 근거로 정해진 액수이다. 예를 들어 식품, 음료, 담배, 의류, 집안 보수비, 내부시설 관리비, 가전제품, 의료비, 교통비, 텔레콤, 여가 문화, 식당, 기타 서비스 비용으로 항목을 구분하여 최저 생계비를 산출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가 이 제도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유는 보조금 책정에 예외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지병으로 인해 고가의 의약품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조금이 물가 변동에 따라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연금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도 지적되었다.
게다가 자녀 보조금 설정이 실제 수요(tatsaechlicher Bedarf)를 산출한 것이 아니라 성인을 기준으로 하여 60, 70, 80%로 정해졌다는데 대해서도 법원은 이의를 제기했다.
정부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법원이 헌법 조항 제1조의‘인간의 존엄성(Menschenwuerde)’을 거론하며 사회보장제도의 한계에 대해 법원이 신중하게 고려해 볼 의향을 명백히 한 것이다. 즉 헌법재판소가 Hartz IV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다면 보조금 수혜자의 인간 존엄성을 근거로 한 보조금을 산출해야 하며 그런 경우 정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수개월 내로 헌재의 판결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자못 관심거리이다.
현재 기초보조금 수혜자는 730만 명. 5년 전 지금의 복잡한 법안이 효력을 발생하자 시민들의 대 정부 소송이 극심하게 늘고 있어 무려 10만 건이 계류 중에 있다. 시민들이 노동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보조금을 더 받아내려는 것이다. 연방사회법원(Bundessozialgericht)은 이 때문에 별도 담당부서를 창설해야 했다.
아래 소개하는 소송 건을 보면 장난기도 다분히 섞여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시민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일반화 한데서 나타나는 행정의 비효율성과 낭비가 막대한 수준에 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초생활 수혜자가 법적 쟁의를 벌일 수 있는 것은 변호사를 통해 국가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소송 건은 시민이 노동청에 신청했으나 기각된 사안으로서 노동청을 상대로 제소한 재판 결과이다.
∎ 17세 학생이 등교 시 필요한 버스 회수권을 구입한다며 무이자 대부를 노동청이 허용할 것을 신청했다. 학생이 승소했다.
∎ 노동청은 수혜자가 출두 요구에 불응하자 보조금을 10% 삭감했다. 이에 항소를 제기한 부인은 12살 된 아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기 위해 노동청에 갈 수 없었다고 변명 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12세가 되면 혼자 집으로 올 수 있는 나이라고 노동청의 편을 들었다.
∎ 노동청에서 월세도 지불하므로 필요 이상 큰 사이즈의 아파트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작은 집으로 이사할때 침대와 옷장이 벽에 단단히 박혀 있어 운반 시 망가졌다. 그는 새 가구를 얻을 수 있었다.
∎ 40유로를 주고 샤워 호스를 사서 바꾸는 일을 인테리어 업체에 시켰다. 법원이 지불을 거부한 이유는 4유로짜리 호스도 있고 호스 연결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두 아이를 둔 가정이 60제곱미터에서 70제곱미터로 이사 하여 월세 차액 80유로가 추가로 허용되었다.
∎ 30제곱미터 원룸에 사는 부인이 1인에 허용되는 45제곱 미터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이사비용과 월세를 요구했 으나 거절당했다.
∎ 한 엔지니어가 시간당 1.50유로를 받고 공공시설에서 잡역 일을 거부한 이유는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다녀야 하므로 시간 여유가 없다는 것. 노동청이 승소하였으므 로 이 잡역을 하지 않으면 보조금이 30% 삭감된다.
∎ 한 남성이 노동청방문 요구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자기 바지의 지퍼가 고장이 난 때문이란 이유를 댔다. 법원은 이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기혼부부가 같은 아파트에서 주방, 침대를 별도 사용하 므로 보조금을 올려 달라는 요구는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
∎ 지붕에 TV 안테나가 있는데 추가로 케이블 설치를 요구 했으나 거절당했다.
∎ 아이가 학교에서 가는 2일간의 수학여행 비용을 신청했 는데 노동청은 1일분만 지불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2일 분을 받을 수 있었다. 하루만 가면 아이가 친구들에게서 격리된다는 이유였다.
∎ 월세와 온방비를 1.38유로 올려달라며 긴급청구를 제출 했으나 1.38유로가 생활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라는 이유 로 일반재판으로 넘겼다. [유럽리포트*2011년]
13. 작은 역사 청산
프랑크푸르트 인근 Bad Soden시에는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2차 대전 마지막 고비였던 1945년 3월 말, 독일군이 각자 해산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소년병이 부대를 이탈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사건을 기리기 위함이다.
18세 미만이었던 이들은 부대장의 해산 지시를 받고 귀가 중, 여전히 군복을 입고 있던 것이 화가 되어 체포되었다. 탈영(Fahnenflucht)자는 무조건 총살이었다. 이들은 연대본부가 있던 Bad Soden에서 총살형 언도를 받았으나 공군부대원이 사형집행을 거부하자 프랑크푸르트 주둔 나치 친위대(SS 부대) 요원에 의해 총살당했다.
최근 보이스카우트가 이 역사적 기록을 발견했다.
[유럽리포트*2014]
14. 존경 받는 직업 순위
알렌스 박 시장조사기관 발표에 따르면 2013년의 존경 받는 직업 순위는 다음과 같다. 의사 - 간호사 - 경찰 - 교사 - 집수리 기능직(Handwerker) - 목사 - 교수 - 엔지니어 - 변호사 - 약사 - 기업인 - 기자 - 직업스포츠맨 - 장교 - 서적판매원 - 정치인 - TV PD - 은행가. 지난 10년간 변동은 경찰, 교사, 기능직이 올랐으며 목사, 신부, 교수가 떨어졌다. [유럽리포트*2013년]
15.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역사청산
독일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에 대한 청산 작업은 말 그대로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바이에른에서 운송업을 하는 Heinrich Hasch씨는 자기 승용차 표지판으로 이름에서 첫 문자를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Toel-HH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 신청에 허락이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Heil Hitler(하일 히틀러)’라는 나치의 중요한 ‘히틀러 구호’라든가, 나치시대 2인자였던 Heinrich Himmler 역시 HH라는 문자로 약자를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번호 표지판으로 소유자가 극우적인 사상 소유자임을 과시하는 선전표어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 내용은 연방정부 교통부에서 하달된 것으로 여기에는 KZ (Konzentrationslager : 집단수용소), NS (Nationalsozialismus : 나치의 집권이념), SS (Schutzstaffel : 나치특수부대), AH (Adolf Hitler : 히틀러의 이름)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2010년도에는 몇 가지 종류가 확대되어 HH가 여기에 포함되었다. 표지판에는 먼저 도시 지역의 약자가 온다. 예를 들면 함부르크 표지판은 금지되어 있는 HH로 시작된다. 그러나 첫 도시명에는 이 금기 사항을 적용시키지 않고 있다. 역사를 기억에서 삭제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럽리포트*2014년]
16. 변해가고 있는 독일정신
‘빨리빨리’는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온 한국인 특유의 시대정신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이에 정반대되는 특성을 가진 국민이 바로 독일인이라고 한다면 아마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In Deutschland geht alles langsam. (독일에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인다)’라는 명구(?)를 들어 본 교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식당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 독일적 특성은 오랫동안 변함이 없이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천천히’ 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뛰면서 생각한다’ 는 말이 있다. 왜 뛰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시간의 여유도 없이 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천천히’ 라면 행동을 하기 이전에 충분히 생각을 한다는 의미다. 생각해야 할 대상은 다양하다. 왜?, 언제까지?, 결과는?, 중단 한다면? 등등 의문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독일인이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따져가며 준비하는 성격이 독일식이다.‘철저함과 그리고 비판적인 성찰’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독일인의 국민성이 급격한 선회를 보이고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 전환점을 이룬 것은 일본의 원자로 사고였다. 원전사고를 접하자 가장 놀라면서 공포감에 빠진 국민이 독일인이었던 것이다. 지진이라고는 언론 기사를 통해서나 알고 있으며 직접적인 피해란 당해본 적이 없는 독일이다. 핵발전소는 독일에 21개 있다. 이번 핵 사고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독일정부는 핵발전 완전포기를 선언했다. 7개의 오래 된 핵발전소는 당장 폐쇄하고 나머지는 2022년까지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녹색당은 이에도 불만족이었다. 정부가 모든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가동 후 마지막 순간에 일시에 폐기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순차대로 하나씩 폐기해 나갈 것을 요구하여 이 뜻을 관철시켰다. 지진이 발생한지 불과 석 달 만이라는 초고속으로 독일의 핵 발전 포기문제는 모든 전문위원회 등을 거쳐 추진 결정되었다. 이만하면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 도 당할 수없는 속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의 급격한 탈 원자력 정책발표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으며 데모는 이어져 갔다. 후쿠시마 원자로에서 9000km 동떨어져 있는 독일에서 25만 명이 반 핵발전 데모를 위해 가두에 나선 것이다. 4천만 명이 거주한다는 사고현장 인근 도쿄에서는 1000여명이 거리에 나왔다니 좋은 비교가 된다. 마침 핵 사고 직후 독일에서 일부 주 의회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녹색당은 50년간 보수당이 집권하던 주정부를 장악하는 이변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녹색이냐 보수냐와 무관하게 모든 당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가며 핵 발전 포기를 선언하기에 바빴다. 우리에게 놀라운 이유는 지금까지 모든 독일인에게서 보아온 특유의 조심성 있고 신중한 행태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즉 ‘뛰고 나서 생각하려는’ 한국식 사고방식이 앞선 것이다. 그리고는 비판적인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질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즉 독일은 핵발전 포기를 선언한 이후에야 그 후유증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핵발전을 포기하면 어디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있을 것인가, 전력은 얼마나 가격이 상승할 것인가 등 많은 의문이 뒤따랐다. 해답은 어디서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열배까지 차이가 나는 수치도 보도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근본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따지려는 언론이나 전문가는 없었다는 것 역시 기이한 현상이다.
독일의 한 원자력발전소 경영자인 RWE는 일본 핵 발전 사고 직후 주 정부의결에 따라 운행 중인 한 발전소를 폐쇄해야 했다. 그러나 이 직후 정부결정의 위법성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중이다. 원자로 운행중이던 3개 기업의 소송으로 2016 년 3월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업에 대한 기본권 박탈여부에 대해 심의중이다. 독일은 무엇 때문에 빨리빨리 정신에 빠지게 된 것인가. 독일인에게 이런 의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근본 원인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 사회현상은 또 다른 독일인의 특성인 ‘German Angst’ 에서 동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원자로가 곧 터질 것 같은 Angst에 짓눌린 나머지 사고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원래 외국인들은 독일인을 ‘공포심에 쌓인 민족’이라고 평한다.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지 못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태를 즐기고 있는 민족으로 보는 것이다. 미래의 문제, 현실정치, 경제, 환경문제,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 등등 끝없이 많은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비판하며 이런 혼돈과 불안한 상황을 즐기면서 이와 공존하는 민족성의 소유자라고 한다. 심지어 비판정신을 오락으로 간주하는 민족이라고까지 평가 받는 것이 독일민족이다. 이번 핵 포기 건을 보면 독일인의 판단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마땅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단지 무엇엔가 쫓기다 못해 경솔한 속단을 내린 것이 통상적인 관습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최종적인 결과에 대한 가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의문이 따르는 것이다. 이 독일적 현상에 대해 주간지 Zeit 발행인 욥페는 몇 가지 다른 해석을 가하고 있다. 한 가지 그의 지론은 ‘독일인은 지금 걱정거리가 없는 것’ 이 깊은 원인이라고 말한다. 유럽국가 중에서도 유일하게 청년실업이 없고 경제가 번영하고 있는 복 받은 나라이다. ‘걱정이 없으면 그만큼 Angst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Angst는 자연법칙과 같아 그 전체의 합은 일정한 크기를 갖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패닉 상태로부터 자유로울수록 핵 사고에 대한 공포가 크다’ 라는 것이 그의 요점이다. 어쨌든 이 기이한 현상을 놓고 앞으로도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리포트*2012년]
17. 생명 존엄의 귀중함
국내에서 남북간에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어가고 있을 때는 독일언론에도 한반도 발 보도 기사가 톱뉴스로 이어갔지만 이번에는 특히 현지인의 주목을 끈 기사가 있었다.
그 내용은 ‘원수들의 목을 따서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북한 발 통신내용이다. 독일인들이 특히 과민반응을 보인 제목의 초점은 ‘목을 딴다’ (‘die Kehle durchschneiden’)고 하는 인간살륙 방법에 대한 표현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 살인방법은 적을 죽이는 흔한 방법이었겠지만 현대 유럽사회에서 이러한 도살방법은 유대교, 이슬람교 등 종교적인 의식과 연관되어 있을뿐 아니라 동물보호와도 맞물려있어 매우 민감한 사회적 사안에 속한다.
동물도살시에는 의식이 있을 때 느끼게 되는 고통을 가능한 한 덜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관념이다. 그럼으로 양계장 닭을 잡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의식을 잃은 상태로 한 다음에야 도살단계로 넘어간다. 독일에서는 현재 무슬림의 도살은 금지되어 있다. 그만큼 도살규정이 여러 관점에서 까다로운 탓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도살은 특별한 의식에 따라 전문기술자만이 행할 수 있다. 동물애호가 입장에서는 생리학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 피의 완전제거, 뇌의 산소공급여부 등을 고려함으로 이에 따라 법적으로도 복잡한 사안으로 꼽히는 것이다. 또한 이는 단순히 동물보호라는 관점에서 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이며 인간존엄성의 문제라는 데서 우리에게는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한다.
전쟁에서의 승리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적군의 목을 따야한다’ 는 국가의 명령을 받는 사회와 반대로 동물에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함을 유지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보며 ‘행복한 닭의 삶’ 을 논하는 사회와는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럼으로 독일언론에서 ‘광적인 독재국가’ 라든가 ‘구석기시대적 공산주의’ (Steinzeit-Kommunismus)와 비유하고 있는 것은 이런 낮고 구시대적인 인식수준에 기인한 것이다.
‘구석기시대 공산주의’ 란 마지막으로 1970년대 초 캄보디아의 폴퐅 정권에 대한 지칭이었다. 그들에게는 나와 다른 자, 생각이 다른 자가 살해대상이었다. 여기에는 의사, 교사 등 사회 엘리트층이 속했다. 의사는 불과 50 명만이 살아 남았고 100 만 명대에 달한다는 전체 희생자 수는 정확하게 알려질 수도 없었다고 한다.
외국언론이 모든 것을 우리 국민성 탓 아니면 아시아적 특성으로 돌리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를 갖게 되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보스턴에 테러가 발생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범인과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연대책임에 돌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자칫 국민들이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리포트*2014]
18. 유럽 대학 학제개혁의 결과는 ?
유럽에서 전후 있었던 개혁가운데 가장 중대한 개혁으로는 15년 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학교육개혁이 꼽힌다. 유럽 모든 국가가 동시에 대학교육제도를 뱃첼러제도로 전환한 것이었다. 이는 유럽에 균일화된 제도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이 원래 개혁으로 기대했던 목표가 거의 성공한 바가 없다는 발표가 나왔다. 독일에서 가장 중요시 한 점은 대학생의 학업중퇴자 비율 (Abbrecherquote)이다. 현재중퇴율은 힉과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30% 이상이 되는 학과는 언어계열, 문화, 경제, 물리, IT학과 등이다. 대학 전체적으로도 일반대학에서는 뱃첼로에서 33%, 전문대학에서 25%가 중퇴자로 일단 전공학과를 떠난다. 특히 높은 학과가 이공계로 3 명 중 1 명이 중퇴한다. 이 원인에 대해서 교육재정의 책임자인 정치계는 (주정부및 연방정부) 대학자체에 이 책임을 돌리는데 심지어 주정부에 따라서는 중퇴자 비율을 법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계획경제를 교육계에 도입하려는 시도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논란이 크다. 이런 간섭은 결국은 교육의 질저하 혹은 학생들의 채점시 최고점수의 인프레 현상이 따르는 부작용이 기대된다고 보기도 한다. 기업은 이런 기이한 움직임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있다. 최근 업계 조사에 의하면 47%의 기업이 뱃첼러 졸업생에 대해 만족을 표했는데 이 비율은 지난 8 년 간에 무려 20%가 감소한 것이다. 뱃첼러 제도의 연한은 현재 3 년, 4 년으로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대학중퇴생 문제는 독일교육계에 주어진 장기적인 골칫거리 과제이기도 하다. 어려움은 기초적인 통계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중퇴자라면 전과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타 대학으로 전학하거나 혹은 이미 취업을 했을 수도 있다. 대학당국이 직접 중퇴생에게 설문조사를 시도했으나 답변자는 10% 미만이어서 실패했으며 오스트리아에서 실시하는 제도로 전체 대학생에게 “학생일련번호” 를 도입한다는 계획도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학비무료’ 라는 제도와 관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유럽리포트*2015]
19. 아직‚ “엘리트” 대학이 없는 독일
“엘리트” 란 사회적 집단간에 형성될 수밖에 없는 차등화에 기인된 것이다. 개개인간에 능력의 차등화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면 독일대학에 ‘엘리트’ 대학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일만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학 발전과정과는 크게 구별되는 점이다. 특히 2 차 대전 이후 독일에서 ‘엘리트’ 라는 개념사용에 거부감을 품게 된 주 요인은 히틀러시대 즐겨 사용하던 개념으로, 사회 각분야 엘리트가 정권에 동조함으로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작용한 것이다. 그 후 60년대, 70년대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불평등을 조장하는 엘리트 의식이란 전혀 화두에 오르지 않았다. 여기에 변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세계화’ 시대에 이르면서였다. 경쟁시대 엘리트의 역할을 의식하며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분야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부는 10년 전 처음으로 엘리트 조성을 위한 연구비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한국에서 브레인 21 이란 표제하에 연구비지원을 한 제도와 같다. 독일에서는 Exzellenzinitiativ (Exz.Init.)라는 명칭으로 지원정책이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람은 Konzept, Cluster, Graduiertenkolleg 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정부는 이 과정에서 성급하게 ‘엘리트’ 를 조성했는데 실은 이는 성급한 졸작품에 속한다고 해도 심한 표현이 아니다. 이 컨셉트에 선발된 프로그람 제출 대학에 이 Exz.Init. 기간에 한해 ‘엘리트’ 라는 영광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 대학에는 베를린 훔볼트대학, 브레멘, 쾰른, 튀빙겐, 드레스덴 공대, 뮌헨공대, 뮌헨대, 베를린 자유대, 콘스탄츠, 하이델베르그, 카를스루헤 공대, 아헨 공대 등이 속한다. 게다가 칼스루헤 공대, 괴팅겐, 프라이브르그, 보쿰, 마인츠 대학등은 2차 경쟁에서 낙방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여기서도 ‘엘리트’ 를 모르고 자란 독일관료들의 인식이 나타났다. 도대체 연구결과가 나타나기도 전레 연구계획서만으로 최고의 평가점수 그리고 ‘엘리트’ 를 부여한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좀 더 엄격한 의미에서 ‘엘리트’ 를 선발한다면 여기에는 해당대학 전체 교수진과 학생들에 대한 평가 역시 같은 무게를 두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2차 경쟁에서 낙방한 3개 ‘엘리트’ 대학은 이 칭호를 박탈당하고 평범한 대학으로 전락했다. 위에서 보듯이 독일대학의 엘리트화는 이렇게 복잡다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학계에서 경쟁의 한가지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일부 대학간에 집단 형성으로 시너지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11년 전 첫 발을 디딘것이 공과대학 (Technische Universitaet) 집단이었다. 현재 독일에 18개의 공과대학이 있는데 이 가운데 전통있는 9개 공대만이 뭉쳐 ‘TU 9’ 을 조직했다 (독일종합 대학에는 공과대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선발기준으로는 연구, 교육의 실적을 중심으로 고려했다. 이들은 대외활동, 교육, 재정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이익을 대표한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www.tu9.de). 3년 전에는 일반 종합대학이 유사한 조직을 구성했다. 독일 종합대학에서 일부대학이 서열화를 매긴다는 데는 실상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U15’ (www.U15.de)라는 이 협회에는 역사적인 전통을 지닌 대학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특기할만 한 사실은 동독지역에서는 Leipzig 대학과 동베를린의 Humboldt 대학만 선발되었다는 것이다.
이 회원대학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차지한 대학을 보면: 베를린에 두 대학, 본, 프랑크푸르트, 프라이부르그, 괴팅겐, 하이델베르그, 쾰른, 라이프찍히, 마인츠, 뮌헨, 뮌스터, 튀빙겐, 뷔르츠부르그 등 15개 대학이다. 그리고 서독지역에서 1960 년대와 70년대 루르지방과 기타 지역에 세워진 많은 대학들이 제외되었다. 이 가운데는 빌레펠드, 보훔, 콘스탄츠, 파싸우, 만하임, 뉘른베르그, 아우그스부르그, 마르부르그, 기-쎈 등 품격있는 대학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U15가 탄생되는데 수 많은 진통을 겪으며 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리라는 짐작이 충분히 간다. 앞으로 이 15개 대학들이 ‘엘리트’ 로의 질적 비약이 가능할지 아니면 재정 쟁탈전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Exz.Ini.가 언제까지 연속될지 아직 미지수이지만 정부는 여기서도 ‘엘리트’ 대학의 수를 줄여나갈 계획에 있다. 영국에서 22년 전 24개 대학이 뭉친 Russel Group은 독일대학에 좋은 귀감이 되겠다.
[유럽리포트*2016]
개인주의가 팽배해있는 서구사회에서는 부모들도 자식의 혼인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독일의 1600만 명 싱글이 적당한 짝을 찾는 길이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인터넷이다. 현재 싱글의 절반인 8백만 명이 결혼정보업체에 등록된 상태라고 한다. 매출은 2년 전, 1억 유로를 넘었으며 성장률 40%를 초과한 적도 있다.
가입 시 기재사항은 애완동물, 희망하는 실내온도, 교육 수준 등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선을 믿는가?’, ‘현금인출기에 누가 가야 하나?’ 라는 실질적인 질문도 있다.
인터넷 업체도 전문화되어 있다. 뚱보, 가톨릭 신자, 농업종사자, 와인 애호가, 종교를 가진 동성애자, 유대인, 혈액형 맞추기 등 다양하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된 지는 오래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구혼광고는 1727년, 『Manchester Weekly Journal』에 실렸는데 당시 대단한 스캔들이었다고 한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라는 요구가 나올 정도였다. 1950년대에도 철학자 하버마스는 ‘주체가 자신의 복면을 쓰고 최대 주식시장에 나타난 것’이라며 주체가 속물적인 것의 사물로 굳어져버릴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언론도, 사회학자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의 능력이 부족했나 보다. [유럽리포트*2010년]
12. 독일인들의 잔 걱정
거의 완벽할 정도인 독일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은 Hartz IV -Arbeitslosengeld II라고도한다-라는 기초생활 보조금 제도이다. 1인 독신자의 경우 월 359유로, 배우자는 323유로, 자녀는 5세까지 215유로, 6~14세 251유로, 15세부터는 287유로를 받는다. 자녀 양육비 (Kindergeld)는 이와는 별도로 지급된다. 그 밖에도 아파트 월세와 온방비 등 관리비도 지급받는다. 4인 가정의 한 달 보조금이 월평균 1600유로에 달한다고 한다.
이 보조금은 정확한 생활비 산출을 근거로 정해진 액수이다. 예를 들어 식품, 음료, 담배, 의류, 집안 보수비, 내부시설 관리비, 가전제품, 의료비, 교통비, 텔레콤, 여가 문화, 식당, 기타 서비스 비용으로 항목을 구분하여 최저 생계비를 산출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가 이 제도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유는 보조금 책정에 예외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지병으로 인해 고가의 의약품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조금이 물가 변동에 따라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연금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도 지적되었다.
게다가 자녀 보조금 설정이 실제 수요(tatsaechlicher Bedarf)를 산출한 것이 아니라 성인을 기준으로 하여 60, 70, 80%로 정해졌다는데 대해서도 법원은 이의를 제기했다.
정부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법원이 헌법 조항 제1조의‘인간의 존엄성(Menschenwuerde)’을 거론하며 사회보장제도의 한계에 대해 법원이 신중하게 고려해 볼 의향을 명백히 한 것이다. 즉 헌법재판소가 Hartz IV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다면 보조금 수혜자의 인간 존엄성을 근거로 한 보조금을 산출해야 하며 그런 경우 정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수개월 내로 헌재의 판결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자못 관심거리이다.
현재 기초보조금 수혜자는 730만 명. 5년 전 지금의 복잡한 법안이 효력을 발생하자 시민들의 대 정부 소송이 극심하게 늘고 있어 무려 10만 건이 계류 중에 있다. 시민들이 노동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보조금을 더 받아내려는 것이다. 연방사회법원(Bundessozialgericht)은 이 때문에 별도 담당부서를 창설해야 했다.
아래 소개하는 소송 건을 보면 장난기도 다분히 섞여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시민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일반화 한데서 나타나는 행정의 비효율성과 낭비가 막대한 수준에 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초생활 수혜자가 법적 쟁의를 벌일 수 있는 것은 변호사를 통해 국가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소송 건은 시민이 노동청에 신청했으나 기각된 사안으로서 노동청을 상대로 제소한 재판 결과이다.
∎ 17세 학생이 등교 시 필요한 버스 회수권을 구입한다며 무이자 대부를 노동청이 허용할 것을 신청했다. 학생이 승소했다.
∎ 노동청은 수혜자가 출두 요구에 불응하자 보조금을 10% 삭감했다. 이에 항소를 제기한 부인은 12살 된 아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기 위해 노동청에 갈 수 없었다고 변명 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12세가 되면 혼자 집으로 올 수 있는 나이라고 노동청의 편을 들었다.
∎ 노동청에서 월세도 지불하므로 필요 이상 큰 사이즈의 아파트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작은 집으로 이사할때 침대와 옷장이 벽에 단단히 박혀 있어 운반 시 망가졌다. 그는 새 가구를 얻을 수 있었다.
∎ 40유로를 주고 샤워 호스를 사서 바꾸는 일을 인테리어 업체에 시켰다. 법원이 지불을 거부한 이유는 4유로짜리 호스도 있고 호스 연결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두 아이를 둔 가정이 60제곱미터에서 70제곱미터로 이사 하여 월세 차액 80유로가 추가로 허용되었다.
∎ 30제곱미터 원룸에 사는 부인이 1인에 허용되는 45제곱 미터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이사비용과 월세를 요구했 으나 거절당했다.
∎ 한 엔지니어가 시간당 1.50유로를 받고 공공시설에서 잡역 일을 거부한 이유는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다녀야 하므로 시간 여유가 없다는 것. 노동청이 승소하였으므 로 이 잡역을 하지 않으면 보조금이 30% 삭감된다.
∎ 한 남성이 노동청방문 요구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자기 바지의 지퍼가 고장이 난 때문이란 이유를 댔다. 법원은 이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기혼부부가 같은 아파트에서 주방, 침대를 별도 사용하 므로 보조금을 올려 달라는 요구는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
∎ 지붕에 TV 안테나가 있는데 추가로 케이블 설치를 요구 했으나 거절당했다.
∎ 아이가 학교에서 가는 2일간의 수학여행 비용을 신청했 는데 노동청은 1일분만 지불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2일 분을 받을 수 있었다. 하루만 가면 아이가 친구들에게서 격리된다는 이유였다.
∎ 월세와 온방비를 1.38유로 올려달라며 긴급청구를 제출 했으나 1.38유로가 생활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라는 이유 로 일반재판으로 넘겼다. [유럽리포트*2011년]
13. 작은 역사 청산
프랑크푸르트 인근 Bad Soden시에는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2차 대전 마지막 고비였던 1945년 3월 말, 독일군이 각자 해산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소년병이 부대를 이탈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사건을 기리기 위함이다.
18세 미만이었던 이들은 부대장의 해산 지시를 받고 귀가 중, 여전히 군복을 입고 있던 것이 화가 되어 체포되었다. 탈영(Fahnenflucht)자는 무조건 총살이었다. 이들은 연대본부가 있던 Bad Soden에서 총살형 언도를 받았으나 공군부대원이 사형집행을 거부하자 프랑크푸르트 주둔 나치 친위대(SS 부대) 요원에 의해 총살당했다.
최근 보이스카우트가 이 역사적 기록을 발견했다.
[유럽리포트*2014]
14. 존경 받는 직업 순위
알렌스 박 시장조사기관 발표에 따르면 2013년의 존경 받는 직업 순위는 다음과 같다. 의사 - 간호사 - 경찰 - 교사 - 집수리 기능직(Handwerker) - 목사 - 교수 - 엔지니어 - 변호사 - 약사 - 기업인 - 기자 - 직업스포츠맨 - 장교 - 서적판매원 - 정치인 - TV PD - 은행가. 지난 10년간 변동은 경찰, 교사, 기능직이 올랐으며 목사, 신부, 교수가 떨어졌다. [유럽리포트*2013년]
15.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역사청산
독일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에 대한 청산 작업은 말 그대로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바이에른에서 운송업을 하는 Heinrich Hasch씨는 자기 승용차 표지판으로 이름에서 첫 문자를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Toel-HH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 신청에 허락이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Heil Hitler(하일 히틀러)’라는 나치의 중요한 ‘히틀러 구호’라든가, 나치시대 2인자였던 Heinrich Himmler 역시 HH라는 문자로 약자를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번호 표지판으로 소유자가 극우적인 사상 소유자임을 과시하는 선전표어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 내용은 연방정부 교통부에서 하달된 것으로 여기에는 KZ (Konzentrationslager : 집단수용소), NS (Nationalsozialismus : 나치의 집권이념), SS (Schutzstaffel : 나치특수부대), AH (Adolf Hitler : 히틀러의 이름)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2010년도에는 몇 가지 종류가 확대되어 HH가 여기에 포함되었다. 표지판에는 먼저 도시 지역의 약자가 온다. 예를 들면 함부르크 표지판은 금지되어 있는 HH로 시작된다. 그러나 첫 도시명에는 이 금기 사항을 적용시키지 않고 있다. 역사를 기억에서 삭제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럽리포트*2014년]
16. 변해가고 있는 독일정신
‘빨리빨리’는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온 한국인 특유의 시대정신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이에 정반대되는 특성을 가진 국민이 바로 독일인이라고 한다면 아마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In Deutschland geht alles langsam. (독일에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인다)’라는 명구(?)를 들어 본 교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식당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 독일적 특성은 오랫동안 변함이 없이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천천히’ 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뛰면서 생각한다’ 는 말이 있다. 왜 뛰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시간의 여유도 없이 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천천히’ 라면 행동을 하기 이전에 충분히 생각을 한다는 의미다. 생각해야 할 대상은 다양하다. 왜?, 언제까지?, 결과는?, 중단 한다면? 등등 의문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독일인이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따져가며 준비하는 성격이 독일식이다.‘철저함과 그리고 비판적인 성찰’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독일인의 국민성이 급격한 선회를 보이고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 전환점을 이룬 것은 일본의 원자로 사고였다. 원전사고를 접하자 가장 놀라면서 공포감에 빠진 국민이 독일인이었던 것이다. 지진이라고는 언론 기사를 통해서나 알고 있으며 직접적인 피해란 당해본 적이 없는 독일이다. 핵발전소는 독일에 21개 있다. 이번 핵 사고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독일정부는 핵발전 완전포기를 선언했다. 7개의 오래 된 핵발전소는 당장 폐쇄하고 나머지는 2022년까지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녹색당은 이에도 불만족이었다. 정부가 모든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가동 후 마지막 순간에 일시에 폐기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순차대로 하나씩 폐기해 나갈 것을 요구하여 이 뜻을 관철시켰다. 지진이 발생한지 불과 석 달 만이라는 초고속으로 독일의 핵 발전 포기문제는 모든 전문위원회 등을 거쳐 추진 결정되었다. 이만하면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 도 당할 수없는 속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의 급격한 탈 원자력 정책발표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으며 데모는 이어져 갔다. 후쿠시마 원자로에서 9000km 동떨어져 있는 독일에서 25만 명이 반 핵발전 데모를 위해 가두에 나선 것이다. 4천만 명이 거주한다는 사고현장 인근 도쿄에서는 1000여명이 거리에 나왔다니 좋은 비교가 된다. 마침 핵 사고 직후 독일에서 일부 주 의회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녹색당은 50년간 보수당이 집권하던 주정부를 장악하는 이변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녹색이냐 보수냐와 무관하게 모든 당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가며 핵 발전 포기를 선언하기에 바빴다. 우리에게 놀라운 이유는 지금까지 모든 독일인에게서 보아온 특유의 조심성 있고 신중한 행태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즉 ‘뛰고 나서 생각하려는’ 한국식 사고방식이 앞선 것이다. 그리고는 비판적인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질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즉 독일은 핵발전 포기를 선언한 이후에야 그 후유증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핵발전을 포기하면 어디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있을 것인가, 전력은 얼마나 가격이 상승할 것인가 등 많은 의문이 뒤따랐다. 해답은 어디서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열배까지 차이가 나는 수치도 보도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근본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따지려는 언론이나 전문가는 없었다는 것 역시 기이한 현상이다.
독일의 한 원자력발전소 경영자인 RWE는 일본 핵 발전 사고 직후 주 정부의결에 따라 운행 중인 한 발전소를 폐쇄해야 했다. 그러나 이 직후 정부결정의 위법성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중이다. 원자로 운행중이던 3개 기업의 소송으로 2016 년 3월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업에 대한 기본권 박탈여부에 대해 심의중이다. 독일은 무엇 때문에 빨리빨리 정신에 빠지게 된 것인가. 독일인에게 이런 의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근본 원인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 사회현상은 또 다른 독일인의 특성인 ‘German Angst’ 에서 동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원자로가 곧 터질 것 같은 Angst에 짓눌린 나머지 사고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원래 외국인들은 독일인을 ‘공포심에 쌓인 민족’이라고 평한다.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지 못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태를 즐기고 있는 민족으로 보는 것이다. 미래의 문제, 현실정치, 경제, 환경문제,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 등등 끝없이 많은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비판하며 이런 혼돈과 불안한 상황을 즐기면서 이와 공존하는 민족성의 소유자라고 한다. 심지어 비판정신을 오락으로 간주하는 민족이라고까지 평가 받는 것이 독일민족이다. 이번 핵 포기 건을 보면 독일인의 판단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마땅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단지 무엇엔가 쫓기다 못해 경솔한 속단을 내린 것이 통상적인 관습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최종적인 결과에 대한 가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의문이 따르는 것이다. 이 독일적 현상에 대해 주간지 Zeit 발행인 욥페는 몇 가지 다른 해석을 가하고 있다. 한 가지 그의 지론은 ‘독일인은 지금 걱정거리가 없는 것’ 이 깊은 원인이라고 말한다. 유럽국가 중에서도 유일하게 청년실업이 없고 경제가 번영하고 있는 복 받은 나라이다. ‘걱정이 없으면 그만큼 Angst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Angst는 자연법칙과 같아 그 전체의 합은 일정한 크기를 갖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패닉 상태로부터 자유로울수록 핵 사고에 대한 공포가 크다’ 라는 것이 그의 요점이다. 어쨌든 이 기이한 현상을 놓고 앞으로도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리포트*2012년]
17. 생명 존엄의 귀중함
국내에서 남북간에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어가고 있을 때는 독일언론에도 한반도 발 보도 기사가 톱뉴스로 이어갔지만 이번에는 특히 현지인의 주목을 끈 기사가 있었다.
그 내용은 ‘원수들의 목을 따서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북한 발 통신내용이다. 독일인들이 특히 과민반응을 보인 제목의 초점은 ‘목을 딴다’ (‘die Kehle durchschneiden’)고 하는 인간살륙 방법에 대한 표현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 살인방법은 적을 죽이는 흔한 방법이었겠지만 현대 유럽사회에서 이러한 도살방법은 유대교, 이슬람교 등 종교적인 의식과 연관되어 있을뿐 아니라 동물보호와도 맞물려있어 매우 민감한 사회적 사안에 속한다.
동물도살시에는 의식이 있을 때 느끼게 되는 고통을 가능한 한 덜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관념이다. 그럼으로 양계장 닭을 잡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의식을 잃은 상태로 한 다음에야 도살단계로 넘어간다. 독일에서는 현재 무슬림의 도살은 금지되어 있다. 그만큼 도살규정이 여러 관점에서 까다로운 탓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도살은 특별한 의식에 따라 전문기술자만이 행할 수 있다. 동물애호가 입장에서는 생리학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 피의 완전제거, 뇌의 산소공급여부 등을 고려함으로 이에 따라 법적으로도 복잡한 사안으로 꼽히는 것이다. 또한 이는 단순히 동물보호라는 관점에서 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이며 인간존엄성의 문제라는 데서 우리에게는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한다.
전쟁에서의 승리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적군의 목을 따야한다’ 는 국가의 명령을 받는 사회와 반대로 동물에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함을 유지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보며 ‘행복한 닭의 삶’ 을 논하는 사회와는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럼으로 독일언론에서 ‘광적인 독재국가’ 라든가 ‘구석기시대적 공산주의’ (Steinzeit-Kommunismus)와 비유하고 있는 것은 이런 낮고 구시대적인 인식수준에 기인한 것이다.
‘구석기시대 공산주의’ 란 마지막으로 1970년대 초 캄보디아의 폴퐅 정권에 대한 지칭이었다. 그들에게는 나와 다른 자, 생각이 다른 자가 살해대상이었다. 여기에는 의사, 교사 등 사회 엘리트층이 속했다. 의사는 불과 50 명만이 살아 남았고 100 만 명대에 달한다는 전체 희생자 수는 정확하게 알려질 수도 없었다고 한다.
외국언론이 모든 것을 우리 국민성 탓 아니면 아시아적 특성으로 돌리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를 갖게 되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보스턴에 테러가 발생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범인과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연대책임에 돌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자칫 국민들이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리포트*2014]
18. 유럽 대학 학제개혁의 결과는 ?
유럽에서 전후 있었던 개혁가운데 가장 중대한 개혁으로는 15년 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학교육개혁이 꼽힌다. 유럽 모든 국가가 동시에 대학교육제도를 뱃첼러제도로 전환한 것이었다. 이는 유럽에 균일화된 제도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이 원래 개혁으로 기대했던 목표가 거의 성공한 바가 없다는 발표가 나왔다. 독일에서 가장 중요시 한 점은 대학생의 학업중퇴자 비율 (Abbrecherquote)이다. 현재중퇴율은 힉과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30% 이상이 되는 학과는 언어계열, 문화, 경제, 물리, IT학과 등이다. 대학 전체적으로도 일반대학에서는 뱃첼로에서 33%, 전문대학에서 25%가 중퇴자로 일단 전공학과를 떠난다. 특히 높은 학과가 이공계로 3 명 중 1 명이 중퇴한다. 이 원인에 대해서 교육재정의 책임자인 정치계는 (주정부및 연방정부) 대학자체에 이 책임을 돌리는데 심지어 주정부에 따라서는 중퇴자 비율을 법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계획경제를 교육계에 도입하려는 시도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논란이 크다. 이런 간섭은 결국은 교육의 질저하 혹은 학생들의 채점시 최고점수의 인프레 현상이 따르는 부작용이 기대된다고 보기도 한다. 기업은 이런 기이한 움직임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있다. 최근 업계 조사에 의하면 47%의 기업이 뱃첼러 졸업생에 대해 만족을 표했는데 이 비율은 지난 8 년 간에 무려 20%가 감소한 것이다. 뱃첼러 제도의 연한은 현재 3 년, 4 년으로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대학중퇴생 문제는 독일교육계에 주어진 장기적인 골칫거리 과제이기도 하다. 어려움은 기초적인 통계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중퇴자라면 전과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타 대학으로 전학하거나 혹은 이미 취업을 했을 수도 있다. 대학당국이 직접 중퇴생에게 설문조사를 시도했으나 답변자는 10% 미만이어서 실패했으며 오스트리아에서 실시하는 제도로 전체 대학생에게 “학생일련번호” 를 도입한다는 계획도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학비무료’ 라는 제도와 관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유럽리포트*2015]
19. 아직‚ “엘리트” 대학이 없는 독일
“엘리트” 란 사회적 집단간에 형성될 수밖에 없는 차등화에 기인된 것이다. 개개인간에 능력의 차등화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면 독일대학에 ‘엘리트’ 대학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일만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학 발전과정과는 크게 구별되는 점이다. 특히 2 차 대전 이후 독일에서 ‘엘리트’ 라는 개념사용에 거부감을 품게 된 주 요인은 히틀러시대 즐겨 사용하던 개념으로, 사회 각분야 엘리트가 정권에 동조함으로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작용한 것이다. 그 후 60년대, 70년대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불평등을 조장하는 엘리트 의식이란 전혀 화두에 오르지 않았다. 여기에 변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세계화’ 시대에 이르면서였다. 경쟁시대 엘리트의 역할을 의식하며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분야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부는 10년 전 처음으로 엘리트 조성을 위한 연구비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한국에서 브레인 21 이란 표제하에 연구비지원을 한 제도와 같다. 독일에서는 Exzellenzinitiativ (Exz.Init.)라는 명칭으로 지원정책이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람은 Konzept, Cluster, Graduiertenkolleg 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정부는 이 과정에서 성급하게 ‘엘리트’ 를 조성했는데 실은 이는 성급한 졸작품에 속한다고 해도 심한 표현이 아니다. 이 컨셉트에 선발된 프로그람 제출 대학에 이 Exz.Init. 기간에 한해 ‘엘리트’ 라는 영광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 대학에는 베를린 훔볼트대학, 브레멘, 쾰른, 튀빙겐, 드레스덴 공대, 뮌헨공대, 뮌헨대, 베를린 자유대, 콘스탄츠, 하이델베르그, 카를스루헤 공대, 아헨 공대 등이 속한다. 게다가 칼스루헤 공대, 괴팅겐, 프라이브르그, 보쿰, 마인츠 대학등은 2차 경쟁에서 낙방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여기서도 ‘엘리트’ 를 모르고 자란 독일관료들의 인식이 나타났다. 도대체 연구결과가 나타나기도 전레 연구계획서만으로 최고의 평가점수 그리고 ‘엘리트’ 를 부여한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좀 더 엄격한 의미에서 ‘엘리트’ 를 선발한다면 여기에는 해당대학 전체 교수진과 학생들에 대한 평가 역시 같은 무게를 두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2차 경쟁에서 낙방한 3개 ‘엘리트’ 대학은 이 칭호를 박탈당하고 평범한 대학으로 전락했다. 위에서 보듯이 독일대학의 엘리트화는 이렇게 복잡다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학계에서 경쟁의 한가지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일부 대학간에 집단 형성으로 시너지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11년 전 첫 발을 디딘것이 공과대학 (Technische Universitaet) 집단이었다. 현재 독일에 18개의 공과대학이 있는데 이 가운데 전통있는 9개 공대만이 뭉쳐 ‘TU 9’ 을 조직했다 (독일종합 대학에는 공과대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선발기준으로는 연구, 교육의 실적을 중심으로 고려했다. 이들은 대외활동, 교육, 재정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이익을 대표한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www.tu9.de). 3년 전에는 일반 종합대학이 유사한 조직을 구성했다. 독일 종합대학에서 일부대학이 서열화를 매긴다는 데는 실상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U15’ (www.U15.de)라는 이 협회에는 역사적인 전통을 지닌 대학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특기할만 한 사실은 동독지역에서는 Leipzig 대학과 동베를린의 Humboldt 대학만 선발되었다는 것이다.
이 회원대학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차지한 대학을 보면: 베를린에 두 대학, 본, 프랑크푸르트, 프라이부르그, 괴팅겐, 하이델베르그, 쾰른, 라이프찍히, 마인츠, 뮌헨, 뮌스터, 튀빙겐, 뷔르츠부르그 등 15개 대학이다. 그리고 서독지역에서 1960 년대와 70년대 루르지방과 기타 지역에 세워진 많은 대학들이 제외되었다. 이 가운데는 빌레펠드, 보훔, 콘스탄츠, 파싸우, 만하임, 뉘른베르그, 아우그스부르그, 마르부르그, 기-쎈 등 품격있는 대학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U15가 탄생되는데 수 많은 진통을 겪으며 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리라는 짐작이 충분히 간다. 앞으로 이 15개 대학들이 ‘엘리트’ 로의 질적 비약이 가능할지 아니면 재정 쟁탈전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Exz.Ini.가 언제까지 연속될지 아직 미지수이지만 정부는 여기서도 ‘엘리트’ 대학의 수를 줄여나갈 계획에 있다. 영국에서 22년 전 24개 대학이 뭉친 Russel Group은 독일대학에 좋은 귀감이 되겠다.
[유럽리포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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