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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사는 길 [강준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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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03회 작성일 24-04-1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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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 개혁과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번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승,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지만, 선거의 승패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소수의 중도파가 결정했다. 국민의힘은 전체 득표수 기준으로 2년 전 대선 땐 24만표(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지만, 이번 총선에선 157만표(5.4%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이 차이의 변화가 바로 중도 유권자의 이동에 따른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이 중도 유권자들에게 공정과 상식의 수호자처럼 여겨져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들이 등을 돌린 건 그런 믿음을 철저하게 배신한 윤 대통령의 내로남불 행태 때문이다. 특히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 공사 구분 의식이 전혀 없는 내로남불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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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이번 총선은 속된 말로 ‘윤석열이 말아먹은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종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 임명을 발표한 3월4일부터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4월1일까지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이 참패를 당하는 데 도움이 될 여러건의 일들을 했다. 묘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는 왜 이런 묘기를 부렸을까?

나는 윤 대통령이 앞으로 공개적으론 무슨 말을 하건 속으론 이번 참패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그간 윤 대통령이 보여온 정치적 지향성과 행태는 거시적인 노선과 정책 중심이었다. 그러나 중도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신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미시적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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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 문제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 대통령의 정치관에서 볼 때는 그건 매우 사소한 문제이며, 야권의 선전·선동에 의해 부풀려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지난 2월7일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대통령 특별대담’을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게다. 그는 ‘김건희 명품백’ 논란에 대해 “시계에다가 몰카를 들고 온 정치공작”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어떤 사과나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아쉬운 점은 있다”고만 했다.

아! 주변의 참모와 지인들은 왜 그를 말리지 못하는가? 그가 1월 중순에 나온 당시 국민의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발언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았더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과오였다. 그는 “(역사학 교수가)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등이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한 것이라고 하더라”며 “지금 이 사건도 국민들의 감성을 건드렸다고 본다”고 말해 여권 내부와 국민의힘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샀다. 그의 진짜 메시지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에 가려져 전달되지 않은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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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게 아니다. 역사란 무슨 거창한 사건과 명분만이 아니라, 매우 사소하게 시작된 일이 야기한 집단적 감성의 폭발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바뀔 수 있다는 것, 대통령이 사소하게 여기는 명품백 하나가 윤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게 바로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의 수준이자 실력이었던 걸까?

김경율 전 위원은 15일 “(그 사건 이후) 많은 당내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인터뷰 자제했으면 좋겠다’ ‘너는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하고 언론과 만나고 있으면 누군가 옆에 와서 빤히 쳐다보고 뭔가 감시받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종섭 전 대사, 황상무 전 수석 사태가 일어나자 의원들, 중진들 전화와 문자가 20~30통 왔다”며 그 내용이 “‘네가 나서서 조금 더 이야기해주라’는 것이었다”고 허탈해했다.

중요한 건 바로 이 대목이다. 김 전 위원은 “당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다른 목소리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목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윤 대통령 자신이다. 지난해 2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대통령실의 ‘명언’으로 대변된, 대선주자급 당내 인사들에 대한 침묵 강요는 윤 대통령의 ‘불통과 오만’을 상징하는 동시에 윤 정권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한 사건이었다. 이제 윤 대통령이 살 길은 딱 하나다. 진정한 소통, 그리고 그 전제인 겸손의 회복이다. 검사 시절 권력의 보복으로 겪어야 했던 가장 비참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오만의 화신처럼 변신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 그게 바로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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